일본인들은 한 해를 ‘도시(나이)’라고 한다. ‘도시’는 벼, 벼이삭이다. ‘도시’에는 세신歲神, 세덕신歲德神이라는 뜻이 있다. 풍작을 의미하는 모든 곡령穀靈을 의미한다. 조선시대에 부루단지에 모신 신령과 같은 뜻이다. 부루신은 사라지고 곡령신만 일본 땅에 남은 것이다.

세덕歲德이라는 말은 단군왕검이 선포하고 가르친 덕교德敎와 관련이 있는 말이다. 세덕은 세勢(1년의 머리)에 덕이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덕교에서 세덕을 가르쳤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덕교는 우주만물의 이치 중에서 세덕을 중요시한다. 세덕이 곧 원형이정元亨利貞이라는 우주원리의 머리가 되기 때문이다. 세가 그렇다는 것이다. 원형이정이 형상화 된 것이 사계절이다. 사계절 또한 덕으로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1년을 춘하추동으로 구분하고, 춘하추동이 이루는 결과 하나 하나를 덕으로 보아서 사덕四德이라 하였다.

춘하추동을 철학으로 말하면 원형이정元亨利貞이다. 원형이정은 사계절의 도道가 된다. 춘하추동春夏秋冬이 결실을 보면 덕德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원형이정은 원리로 숨어 있고, 춘하추동은 도로 형상화 된다. 도가 형상화되어 나타나는 것이므로 덕이라 한 것이다. 계절의 덕을 사덕四德이라 하였다. 봄은 춘덕春德이고, 여름은 하덕夏德이고, 가을은 추덕秋德이고, 겨울은 동덕冬德이다.

우주만물이 반복되는 춘하추동의 계절에 적응하며 삶을 살아가는 것을 검덕儉德(역의 天地否卦에 儉德辟難이라는 효사가 있다)이라 하였다. 사계절을 숭상하자는 것이 이른바 단군왕검이 선포한 덕교이다. 이를 시행하는 것이 검덕이다. 한국에서는 검덕이 무속신앙에 뿌리박혀 있다. 단군왕검을 신격화하고 신앙화하여 숭상하기도 하는데 이를 단군신앙이라 한다. 지금 우리에게 검덕이라는 덕목은 남아 있지 않고, 다만 ｢역경易經｣의 효사爻辭에만 남아 있다.

사덕의 우두머리가 춘분인데, 세수歲首 다음에 온다. 세수가 어김없이 찾아와 세덕歲德이 되었다. 세덕이라는 말은 우리에게는 남아 있지 않지만 일본에는 남아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정월 초하룻날 차례를 지내고 나서 온 가족이 모여 떡국을 먹는 일은 세덕을 기리는 풍습으로 볼 수 있는 오래된 풍습이다.

일본은 세덕신을 종교화하였다. 그래서 세신歲神이 산에 가 있는 동안 만물이 숨을 죽이고 새 생명이 태어날 때를 기다린다고 하였다. 겨울에는 죽음에 걸린 태양을 부활시키기 위하여 태양제사太陽祭祀인 아오이마쓰리葵祭를 지낸다. 진혼제振魂祭(잠든 혼을 흔들어 깨우는 의식)도 원래 태양제사에서 유래하는 것인데 이를 무녀(심신자)가 주관하였다.

한국에서는 무당이 이 행사를 한다. 일월마지가 그것이다. 무당이 물이 담긴 물동이 위에 올라가서 제금을 치며 해와 달을 깨워 맞아들인다.

덕교의 유습으로 보이는 일본의 4대 마쓰리

이른바 일본의 4대 마쓰리는 정월제正月祭, 봄의 떡국을 먹는 도시고이(나이를 먹는다는 뜻) 봄 축제, 여름의 조령제, 가을의 신상제新嘗祭를 들 수 있는데, 이들 4대 마쓰리는 4계절의 순환과 재생을 축으로 해서 전개되며 계승되어 왔다.

이를 다시 말하면 춘하추동제가 되는데, 사계절을 숭상하기 위하여 축제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덕교가 일본화 한 것을 신도라고 해도 과히 본지에서 어긋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신도는 ① 고천원高天原, ②신사神社와 어신체御神體, ③ 마쓰리, ④ 신빙神憑 ⑤ 계불의 다섯 가지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춘분마지 굿과 동지마지 굿을 하는 히라노신사
  
▲ 히라노신사
 

쿄토우 북부 히라노오미야모토쵸(평야궁본정平野宮本町)에는 히라노신사(평야신사平野神社)라는 큰 사당이 있다. 히라노신사는 백제인 칸무천왕이 8세기부터 그의 백제인 조상을 모시고 궁중제사를 지내 온 유서 깊은 터전이다.

지금도 천왕가는 새 천왕 즉위식 때 이 곳에서 대상제大嘗祭라는 의식을 거행한다. 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동안 면면히 이어져 오는 이 의식은, 천왕 즉위 직후 점을 쳐서 정해진 유기국悠紀國과 주기국主基國의 벼, 즉 그 해에 첫 수확한 쌀을 바쳐, 천왕이 왕조신王朝神을 비롯해서 천조대신天照大神과 천신지기신天神地祇神에게 제를 지내고 나서, 이들 조상신들과 함께 먹는 축제이다.

유기국과 주기국은 궁중에서 종자를 수확하는 농사를 짓는 어전御田이 있는 땅이다.

<기기신화記紀神話>에 따르면, 천조대신이 보식신保食神으로부터 오곡의 종자를 받아 유기국과 주기국의 어전에서 키워 수확한다. 수확한 것을 지상에 강림하여 천손天孫인 니니기존 즉 천조대신의 손자에게 주어 백성들이 먹고 살게 한다. 니니기존에게 오곡의 종자를 넘겨주기 전에 먹어보는 행사가 대상제이다. 천왕이 왕조신에게 감사하고 이렇게 함으로써 천왕의 덕이 증가한다고 믿는다.

대상제를 거행하기 전에는 궁중에서 카라카미노마쓰리(한신제韓神祭)를 지낸다. 한신제는 2월 축일丑日에 올리는 춘일제春日祭를 지낸 후와 11월 축일의 대상제를 거행하기 전에 지낸다. 한신제는 일본천왕의 조상인 백제왕들에게 올리는 제사라고 한다.

우리는 한신제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한신제라고 하기보다 조신제朝神祭라고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한신韓神이 어떠한 신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신의 계보를 추적할 수 있고 또 신의 성격 규명이 가능한 조선시대의 신으로 보자는 것이다.

필자는 일본 최고의 신들이 갑비고차에서 직접 일본 땅으로 건너갔거나, 후대에 가야를 통해서 일본 땅으로 건너간 조선의 신들로 보고 있는데, 이들을 조신으로 부르는 것이 이해하기 쉽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라 제사에서 제사자를 받는 대상을 굳이 백제왕으로 한정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고려시대의 나라제사를 보면 제사에 모시는 신들이 우주의 신에서부터 조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고려의 제사를 대표할 수 있는 것으로 원구단에서 그해 정월에 첫 제사를 올리는 천제天祭인데, 하나님(상제上帝)에게 풍년을 기원하는 제를 올린다. 이를 기곡제祈穀祭라고 하였다. 또한 정월에도 방택方澤(方丘壇)에서 신주神州의 지지地祗(지신地神)에 제사지냈다. 신주란 아마 태산곡부泰山曲阜나 참성단塹星壇이 있는 갑비고차甲比古次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름엔 원구단에서 상제에게 기우제를 지냈다.

2월에 사직단社稷壇에서 국토의 신인 후토씨后土氏에게 제사지냈다. 10월에도 제사지냈다. 임금에 따라서 5월에 제사지내기도 하였다.

조상의 사당인 태묘太廟에서는 매절기의 첫 달에 조상에게 제사지냈다. 이외에 별들에게 초제醮祭도 지냈다. 내전에서 는 북두에게 초제를 지냈다. 수춘궁壽春宮에서는 태일太一에게 제사지냈다. 12월에는 대궐에서 액막이굿을 하였다.

신농을 제사지내는 제단이 있었다. 이를 선농적전단先農籍田壇이라고 하였다. 음력 정월의 해일亥日 중 길일을 택하여 제를 지냈다. 왕은 북향하여 꾸부려 앉아 신농씨 신좌 앞에 엎드렸다가 규圭를 잡고 머리를 숙였다가 일어섰다.

풍사단風師壇에서 풍사에게 제사지내고, 우사雨師와 뇌신雷神을 함께 모신 우사단雨師壇에서 두 신을 함께 제사지냈다. 풍사단은 도성의 동북쪽 문밖에 설치하고 입춘 축일에 제사지냈다. 우사단은 도성 성안 서남쪽 월산에 설치하였다.

정월 보름날에는 강안전康安殿 위에 장막을 설치하고 연등회의燃燈會儀(왕의 신년하례식)를 거행하였다. 11월에 의봉문 동편 전의 섬돌 아래에 장막을 설치하고 팔관회八觀會(나라를 위하여 싸우다 죽은 호국영령들에 대한 제사)를 열었다.

고려의 신들은 고려에서 갑자기 생겨난 신들이 아니었다. 삼국시대에 고구려 신라 백제 각 나라에서 모시던 자연신自然神이었다. 삼국시대에 나라에서 모신 신은 삼한시대에 모셨던 자연신이었을 것이고, 삼한시대에 나라에서 모신 신은 조선시대에 모셨던 자연신들이었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일본의 신들 또한 한신韓神이라고 한다는 점에서 같은 신들이었다고 볼 수 있다고 하겠다. 다만 시대에 따라서 이름을 달리했을 것이라는 개연성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일본에서 한신제를 춘일제와 동지제로 지낸다고 하였는데, 춘일제는 춘분마지굿으로 볼 수 있고, 11월 축일에 지내는 신상제는 신년마지를 하는 동지마지굿으로 볼 수 있다.

대상제로 불리는 신상제는 농신제

천왕가에서 행해지는 대상제는 국민들 사이에서는 신상제라는 이름의 농신제로 거행된다. 11월 23일이 신상제가 거행되는 날이다. 동지 때 이 제례를 거행하는 것은 동지마지에 그 근원이 있다고 본다.

한국을 세운 한인천제, 배달나라를 세운 한웅천왕, 배달나라의 뒤를 이은 청구국을 세운 치우천왕, 배달나라를 인수한 단군왕검이 모두 나라를 세울 때 동지마지굿을 하였다.

이고선이 쓴 ｢조선기｣는 다음과 같은 기록으로 시작한다.

갑자 개천 원년 상달 3일(갑자년 갑자월 동지일) 태제께서는 태백산에서 삼신상제에게 재를 지내고 천평天坪 백악白岳에서 황위에 즉위하였다. 이어 나라 이름을 배달나라倍達那羅라고 칭하니 한국桓國에서 나왔다. 때문에 국성國姓을 한桓씨라고 하였다. 단국의 제위를 계승하여 단제檀帝라고 하였다. 이로써 자월子月을 세수歲首로 삼고 상달이라고 하였다. 이로써 동짓날이 한해의 첫날이 되었다. 이르기를 개천기원절開天紀元節이라고 하였다.

배달나라를 개국한 천일태제天一泰帝는 ｢한단고기｣에서 배달나라의 제 17세 혁다세赫多世한웅이다. 그가 배달나라를 개국하면서 동지마지굿을 하였다.

일본 천왕가가 동지 때 대상제를 지내는 기원을, 일본천왕가의 조상인 백제왕가가 백제왕 즉위식 때 동지마지굿을 한데에서 유래하였다고 보기보다, 그 기원을 배달나라의 태일태제 때로 끌어 올려, 배달나라 개천기원절에 두어야 한다고 본다. 백제가 삼한의 후예이고, 삼한은 조선의 후예이고, 조선은 배달나라의 후예이기 때문에, 일본을 백제의 후예로 본다면, 대상제의 기원을 백제의 고대 조상 나라가 되는 배달나라에 두어도 무방하다고 보는 것이다.

7세기 후반에 칸무천왕 시절부터 왕위 계승 때 동지마지를 친제親祭로 올리기 시작하였다고 기록하였는데, 일본의 조상 나라인 백제나 삼한이나 조선이나 배달나라들이 개천제나 천왕즉위식 때 올렸던 동지마지굿이 일본에 계승되면서, 이들 나라의 개천제나 즉위식 역사가 시간의 무덤에 묻혀 버렸다는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백제계 천왕에 의하여 일본 땅에 정착한 동지마지굿은 농신제로 불리고, 농신제에서 발전한 또 다른 성격의 대상제, 또는 센쇼대상제(천조대상제踐祚大嘗祭)로 발전한다. 일본 학자는 이 제례를, 일본의 왕위 계승권자가 󰡔하늘의 왕자가 되기 위한 의식󰡕이자, 󰡔천왕으로서 자격완성을 위한 진혼鎭魂행사󰡕라고 정의한다. 태일태제가 배달나라를 개국하면서 받고자 했던 하늘의 뜻이나 조상의 뜻을 이렇게 정의한 것일 것이다.

천왕즉위식을 하기 전에 올리는 해마지

천왕 즉위식을 하기 전에, 천왕 내정 자는, 선왕이 사용하던 이불(금衾)을 덮고 잠자는 의식을 행하여, 선왕의 혼을 받아들인다. 이렇게 함으로써 선왕의 혼백이 신왕의 몸으로 들어온다고 믿는다. 육체에는 생사가 있지만, 혼은 불변불멸不變不滅한다고 보는 생사관에서 비롯한다. 천왕의 혼마지를 히노마코도(日の御子) 즉 해마지로 본다. 우리 굿에서 행하는 일월마지와 같은 행사가 천왕가식대로 행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행사를 진상추금眞床追衾이라고도 하는데, 매년 되풀이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천왕의 위력이 강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새로운 힘을 받은 천왕은 고어좌高御座에 올라가 백성들에게 축사한다. 일신日神, 즉 천조대신을 모신 장소와 동일시하여 천왕을 모시는 곳이 고어좌이다.

새해 원단元旦에, 고어좌에서 천왕이 행하는 축사는 하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종교적인 행태가 대상제를 종교행사로 보게 한다. 이 행사를 통하여 천왕의 혼이 선대와 후대 사이에 계승된다고 믿는다. 이 밖에도 대상제에는 지방의 성주가 천왕에게 행하는 속복의례屬服儀禮적인 성격도 함께 가지고 있다. 대상제로 맺어진 천왕과 성주 사이가 성혼聖婚으로 맺어지기도 한다. 이 속복의레를 삼한三韓 정복자들이 행했던 의식에서 기원한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이 제례는 갑비고차나 가야에서 건너온 정복자를 조상으로 모신 일본에서만 행해지고 있는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고유한 의식이다.

그러나 대상제를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아 신사에 모신 신들에게 올리는 제례가 백제왕에게 올리는 제사라고 짐작할 뿐이다. 또한 히라노신사가 고래로부터 백제 출신 천왕가의 신사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 형편이다.

마을제사의 정점에 모셔지는 단군왕검

일본 마을제사의 정점에 단군왕검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을마다 성황당을 지어 한웅천왕과 단군왕검을 신상으로 만들어 모셨다. 이 유습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다. 일본의 하코鉾와 미코시神輿는 이분들의 신상을 태워 일본으로 모셔간 이동 형의 신당이다.

문물이 발달하면서 단군왕검의 기능은 세분화된다. 우리 굿 대감거리에 보면 대감大監(단군왕검이 왕검이 되기 전에 대감이라는 벼슬을 하였다)으로 표현되는 단군왕검의 기능은 아흔 아홉 가지나 된다. 온갖 재주가 모두 대감에서 나온다. 대감거리에서 무당이 이 부분을 구연口演한다. 그러나 일본은 축제날 온갖 것을 다 하코에 실어 이동한다. 우리는 입으로 말을 하여 들려주고, 일본은 형상으로 만들어 눈으로 보게 한다는 점에서 우리와 다르다. 제관은 단군왕검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아내야 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 그러므로 단군왕검에서 나오는 것들을 하나하나 실어내는 하코의 숫자가 늘어난다. 한 마을이 하코 하나를 만든다고 해도 아흔 아홉 개의 마을에서 아흔 아홉 개의 하코를 만들 수 있다.

고대국가의 왕들은 해가 뜨고 지는 위치와 계절의 시기 등을 알아내고, 농사짓는 법을 가르치는 일을 왕권의 유지를 위하여 절대로 필요로 하였다. 이러한 필요성이 고대 왕들을 제주가 되게 하였다.

그러나 지금 그 역할은 상징적인 의미로만 남아 있다. 고대 왕들이 맡았던 제주의 역할을 세월이 감에 따라 마을의 최고 연장자들이 맡아 하게 된 것이다. 세월의 변화가 제사를 마을 축제로 변하게 하였다.

노인은 도우야當家(마을 제주 집)로 뽑힌다. 누구든지 제주가 되면, 마을의 오랜 전통에 따라 만사를 제쳐놓고 신을 모셔야 한다.

마을축제는 2월 8일에 행하는데, 그 전날(2월 7일) 떡을 만들고 벚꽃 조화를 만들어 장식한다. 2월 8일 오전 5시 30분 제주를 중심으로 한 행렬이 약사당으로 향한다.

흰 눈이 펑펑 쏟아지는 새벽, 어둠 속을 한 무리의 행렬이 지나가고 있다. 행렬의 중심엔 체구가 작달막한 호호백발 노인이 있다. 이날만은 조상이 해온 예에 따라 그가 최고 어른으로 대접 받는다. 이 노인은 단군왕검이 군장君長이었던 시대의 단군왕검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오늘 축제에 나선 노인은 거적으로 싼 짐을 지고 있다. 그 짐은 마을신인 단군왕검에게 바칠 떡이다. 마을신은 우리의 선조가 골짜기마다 성황당을 지어 모셨던 한웅천왕이나 단군왕검의 변형이다. 떡은 조선이 덕국德國임을 의미한다. 그의 어깨에 역사의 신이 지게 해준 덕국이 짊어져있다. 노인은 앞을 보지 않고 뒷걸음치지도 않으며 다만 부릅뜬 눈에 온 정기를 다해 한 걸음 한 걸음 불안정한 걸음을 옮긴다.

노인이 짊어진 떡은 마을신이 내려준 것으로, 제주 집 어른이 옮겨야만 한다. 제주가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었어도 걸음을 걸을 수 있는 한 대리 운반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것이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의 숙명이기도 하다. 제주는 생명력을 다해 그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마을에서 제주를 교체하는 날, 제주 집에서 신을 그 마을에 있는 약사당藥師堂으로 옮겨 간다. 약사당은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난을 방지하기 위하여 약사여래를 안치한 당집이다. 그러나 본래부터 약사여래를 당집에 모신 것은 아니었다. 불교가 들어오면서 도래인이 이미 모셔 온 한웅천왕이나 단군왕검이 약사여래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된 것이다.

이 부분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단군왕검도 원래는 치료의 기능을 담당한 분이었다. 그가 쑥과 마늘로 치료했음을 그가 어깨에 두른 마늘잎과 허리에 두른 쑥잎이 말해 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약사여래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게 된 것일까?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노인이 약사당에 떡과 조화를 봉양하고 나면 제주의 역할은 끝나는데, 마를 갈아 된장에 탄 국을 준비하고, 술과 안주를 장만해 마을 사람들을 대접한다. 사람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무사히 역할을 끝냈다는 자축이다. 그리고 오후에는 약사당에 모여 의식을 거행하고 향연을 베푼다. 다음 제주를 선출하는 의식을 거행하면 이것으로 모든 행사를 끝마친다. 제주가 마을을 지키고 복되게 만든다고 해서 축제 속에 밀착된 생활감각, 경건한 기원, 소박한 즐거움 등이 어우러져 축제무드를 고조시킨다.

마을축제의 유래에 대하여, 일본의 학자들은 고대 일본의 죠우몬繩文시대를 기점으로 해서 야요이彌生문화시대를 지나 고분시대로 들어오면서 형성되었다고 본다. BC 1세기경에 한국을 떠난 삼한 사람에게 정복당한 북 큐우수 지방에서부터 벼농사 법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가면서 아울러 농사의 수호신에게 떡을 바치는 마을제사로 정착하였다고 한다.

원주민들은 키가 크고 늠름하게 생긴 삼한 출신의 정복자에게 지배를 받으며,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라는 계급사회에 편입되고, 이들을 기반으로 한 마을단위의 국가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단군왕검을 신으로 모시던 한 무리가 일본 땅에 정착했는데, 그들을 대표하는 사람이 일본의 천왕가天王家의 최고 어른인 천왕이었다.

"이 시기에 일본 농민들은 온갖 사물에 신령이 있다고 믿고 곡물에게 제사를 지냈다. 대표적인 것이 농사를 풍요하게 해 달라고 밭에 지내는 밭제사田祭り였다. 그 당시 벼농사는 지금처럼 논농사가 아니라 갈대밭을 개간해 벼를 심는 밭농사였으므로 밭의 신에게 제를 지내는 밭 제사가 생겨났다."고 마을축제의 근원에 대하여 정의한다.

밭에서 자라는 벼나 다른 곡물 속에도 신령이 들어있고, 벼나 곡물 밖에 잘 자라게 하는 신령이 따로 있다고 믿어 집집마다 신단(신붕神棚)을 차려 놓고 제를 올렸다. 곡물 밖에 존재하는 신을 모시는 마을제사가 축제로 발전하였다. 이것이 오늘날에는 질병을 퇴치하고 생업을 번창하도록 기원하는 범국가적인 일본의 축제가 되었다.

이 말은 우리의 상고사上古史를 연구하면, 일본 마을축제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가를 알 수 있는데, 이를 알지 못하여 하는 소리이다.

우리는 무속하면 경시하는 경향이 있으나, 일본 사람들은 생활과 밀착해서, 서로를 확인하고 친교하며 개인의 재난을 예방하고, 마을 단위 나아가서 국가 단위의 축제로 발전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 다르다. 마을 제사로 벌어들이는 관광수입도 만만치 않다. 우리는 내 것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고 버린다. 외국에서 들여온 것을 가지고 고유한 내 문화와 종교를 짓눌러 버린다. 왜 그렇게 해야만 하는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노중평 역사천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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